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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채경묵 (蔡敬默)

출 신 지 강원 영월
훈 격 애국장 (1995)
운동계열 의병
 
 

채 경 묵(蔡敬默) (1871)∼미상


강원도 영월(寧越)사람이다.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가하여 충북 제천(堤川), 강원도 원주(原州)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러일전쟁을 일으킨 직후부터 우리의 국권을 침탈하더니, 마침내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우리의 주권을 강탈해 갔다. 이러한 때 채경묵은 강도 일본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일제는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강요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군대마저 해산시켰다. 이에 따라 우리의 민중들은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으켜 무장항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망의 위기상황에서 그는 이 때 마침 봉기한 이강년 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을미의병 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이강년 의병장은 「정미7조약」등 국권이 상실되는 것에 격분하여 다시 봉기하였다. 특히 이강년 부대는 김상태(金尙台)를 비롯한 백남규(白南奎)·변학기(邊鶴基)·성익현(成益鉉)·김운선(金雲仙) 등 유능한 해산군인과 합류하여 대부대로 성장하였다. 이강년 부대는 1907년 9월 16일 제천 추치(杻峙)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여 적 2백여 명을 사로잡았을 때, 채경묵도 이 전투에 참가하여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그는 10월 15일 강릉(江陵) 행정(杏亭)에서 일본병의 공격을 받고 교전을 하였다. 이밖에 그는 이강녕 부대를 따라 북으로 강원도 낭천(狼川 ; 화천)·인제(麟蹄)에서 남으로는 경상도 안동(安東)·영양(英陽)에 이르기까지 주로 태백산맥을 동서남북으로 오르내리고 넘나들며 뛰어난 활약상을 보였다.
그 후 1908년 6월 청풍 까치재에서 이강년 의병장이 적에게 피체되자, 그의 부장들은 저마다 의병을 거느리고 활약하였는데 영월지방에서는 김상태, 삼척지방에서는 성익현, 영양·울진지방에서는 변학기가 오랫동안 활약하였다. 채경묵은 영월지방에서 경술국치 이후까지도 의병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11년 5월 16, 17일 이틀간에 걸쳐 영월군 우변면(右邊面) 택전리(澤田里)에서 김모(金某)라는 자가 의병을 빙자하여 부근 촌락에서 도적질하는 것을 보고, 촌민들에게 그를 처단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피체되어 1909년 3월 20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出典:『大韓民國 獨立有功者 功勳錄』 第 13卷, 國家報勳處, 1996年, pp.600∼601.

註·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25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