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대한광복단 > 대한광복단 주요활동
 
 
 
대한광복단(회)은 국내외에 다양한 형태의 거점을 설치하여 활동기지로 운영하였다.
이들 중 대표적인 것은 영주의 대동상점과 대구의 상덕태상회였다. 이외 삼척, 관주, 예산, 연기, 인천 등에 곡물상을 가장한 거점이 개설되었으며, 서울의 남문여관, 광주의 광일여관 등도 연락장소로 활용되었다. 개인자택인 안동의 이종영 집에서는 친일부호에게 보내는 경고문 작성, 장승원 처단모의 등이 이루어졌다.
대한광복단(회)은 중국에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병력을 양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만주의 근거지 확보는 중요한 과업이었다. 이석대(이진룡), 김좌진 등이 만주지역 사령관에 임명되어 책임을 맡았고 길림, 안동, 무순, 장춘 등지에 각각의 거점이 설치, 운영되었다.

대한광복단(회)은 군대를 양성하여 일제를 타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따라서 무기와 자금의 확보는 중요한 과제였다. 자금모집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광산에 잠입하거나 그들이 수탈한 세금을 환수하고, 친일부호들에게 포고문을 보내 의연금을 받는 방법을 전개하였다. 김대지를 비롯한 단원들은 충남 천안의 직산금광에 잠입하여 모금활동을 했으며, 1916년 채기중은 대원 10여 명을 이끌고 강원도 영월의 중석광산에 침투하였다. 1915년 12월 권영만, 우재룡이 경주에서 세금수송마차를 습격하여 자금을 수합하였고, 이듬해 10월 이석대(이진룡)은 평북영변에서 운산금광으로 가던 동양금광회사 소속의 현금마차를 공격하여 순사 등 7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대한광복단(회)은 일제의 한국 병합 자체를 강제 불법행위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그들이 수금한 세금과 광산, 회사의 이익금을 환수하는 것은 강도에게 빼앗긴 재산을 되찾는 정당한 행동이라 판단한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대한광복단(회)은 식민체제에 기생하는 친일부호들을 대상으로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 한훈, 김상옥, 유장렬 등의 단원들이 전남 보성, 벌교에서 친일파 양재성, 서도현을 처단하고 헌병분견소를 습격, 무기를 수합하였다. 이듬해인 1917년 11월 채기중이 단원 유창순, 강순필, 임세규를 이끌고 영남의 대표적 친일지주인 장승원을 처단하였다. 장승원은 조선총독이 경질될 때 아들을 조선인 대표로 동경에 파견할 만큼 친일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는 구황실 소유의 토지를 불법 강탈했으며, 소작인 부녀자를 구타하여 즉사시키는 등 반민족 지주로 악명이 높았다. 그의 처단은 대한광복단(회)이 결행한 항일의열투쟁에서 가장 상징적인 의거였다. 장승원에 이어 1918년 1월 김한종, 장두환 등 충청도지부의 단원들이 아산군 도고의 친일면장 박용하를 처단하였다.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중심으로 추진된 친일파 심판은 대한광복단(회)이 거행한 가장 대담하고도 강렬한 항일투쟁이었다. 1910년대 국내에 이러한 독립운동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무단통치하에 고통받던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